2014년 8월 13일 수요일

Pieta Signore _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고교 시절, 이탈리아 작곡가 스트라델라(A.Stradella, 1644~1682)가 누군지는 몰라도 그가 쓴 곡인 ‘Pietà Signore(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는 알고 있었다. 가사의 내용은 잘 몰랐지만 멜로디가 아름다워, 전공하는 누나와 형들 따라서 교회에서 즐겨 부르곤 했었다. 현재도 이탈리아 가곡집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유명한 곡인데, 교황청으로부터 ‘특별 근무원(cameriere extra)’이란 명예칭호까지 얻었다던 그 ‘스트라델라’를 생각하며 출근길 곡으로 선택했다. 특히 오늘은 교황께서 방문하는 날이기도 하고 진실로 불쌍히 여겨야 할 많은 사람을 생각하며...
 
  일반적으로 소프라노와 테너는 dminor(d단조) 조성으로 부르는데, 이쁜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의 ‘미스테리움’ 음반 안에 포함된 이 곡을 들으면서 의문 사항이 생겼다. 39마디와 40마디(그림 참조)의 'meno severi'에서 40마디 2번째 박자가 E♭인 관계로, 정상적이라면 온음을 내려 아래 링크한 ‘델 모나코’ 처럼 불러야 한다.
 
  헌데 울 이쁜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는 그냥 반음만 내려서 E로 부른다. 그러니 E♭ major 코드를 Edim. 코드로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중간에 리듬을 바꿔 부르거나 오케스트라 편곡 부분은 이해가 되지만, 이건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는다. 곡의 마지막까지 이 부분과 같은 부분 전체를 똑같이 틀리게 부르는데, 음반 타이틀처럼 정말 ‘미스테리움’이다.....
 
  이 곡의 최고 해석은 어릴 적부터 ‘파바로티’였다. 왜냐하면 당시엔 ‘파바로티’ 노래 한곡만 들어봤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물론 ‘파바로티’는 이 악보대로 잘 부른다. ‘파바로티’의 음성으로 울려퍼지는 이 노래를 마지막 기도하는 마음으로 들어보시길...
‘루치아노 파바로티’ http://youtu.be/Xk12LNzvCf4
 

2014년 7월 31일 목요일

프랑수아 쿠프랭(F. Couperin)의 'trois leçons de ténèbres'

 구약성경의 '예레미야 애가(Lamentations of Jeremiah)'는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1, 2, 4장이 "슬프다"라는 말로 시작을 한다. 오전에 출근하며 들었던 '프랑수아 쿠프랭(F. Couperin)'의 'trois leçons de ténèbres(어둠 속의 세 가지 교훈)'은 이 '예레미야 애가'를 텍스트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두 명의 소프라노가 첫 번째 곡과 두 번째 곡을 한 번씩 부르고 마지막 세 번째 곡은 이중창으로 불리워지는데 보이지 않는 슬픔이 아닌 투명하게 드러나는 슬픔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곡이다. 비탄과 탄식이 가벼움과 밝음으로 인해 눈물이 가리워지는 느낌이지만, 어찌보면 스스로 연약한 얼굴을 겸손하게 숙이고 자신의 나약함을 토로(吐露)하는 감정으로 다가온다.

http://youtu.be/5u_jdMhcMa4 (이중창의 세 번째 곡)

 듣다 보면 '음을 꾸미는 발성'(개인적으로 트로트(?) 창법이라 부름^^)이 처음 듣는 사람에겐 약간은 거슬릴 수 있지만 계속해서 들으면 오히려 흐느끼는 듯한 호소력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 이중창은 바흐의 b단조 미사 'Christe Eleison'의 소프라노 이중창을 불러 일으키는 곡이다. 쿠프랭이 바흐보다 17살이 많긴 하지만 서로에게 음악적으로 어떠한 영향력을 미쳤는지는 잘 모르겠다.(내공이 약해서)

http://youtu.be/e0pnSTPk7sw (바흐 b단조 미사 Christe Eleison)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 Amsterdam)에 가본 적은 없지만 그 곳에 걸려 있다는 '렘브란트(Rembrandt)'의 작품, '예루살렘의 멸망을 슬퍼하는 예레미야(Jeremiah Lamenting the Destruction of Jerusalem)'를 보면서, 자신도 "단 한 번 본적이 없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싶다. 수심 가득하고 슬픔에 찬 예레미야를 그리기 위해 구약성경을 몇 번 정도는 넘겨 봤을 텐데... 오히려 이 음악을 들려줬다면 더 쉽게 영감이 떠오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쿠프랭이 태어나기 38년 전에 완성된 그림이지만 말이다..

2014년 7월 7일 월요일

엄마 찾아 삼만리..

 먹먹한 삶의 현장에서 어느 순간 어릴 적 추억에 잠길 때, 갑자기 생각나는 만화영화 주제가가 있다. 마징가Z, 로보트 태권브이, 미래소년 코난, 은하철도 999도 아닌 '엄마 찾아 삼만리'... 이 곡은 지금도 가사와 멜로디가 전부 기억이 난다. "아득한 바다 저 멀리 산 설고 물길 설어도, 나는 찾아가리 외로운 곳 삼만리"라고 시작하는 곡인데, 링크한 곡은 평소 기억하고 부르는 곡과는 조금 다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곡이 훨씬 아련하고 슬프고 가사가 더욱 좋다는 사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중간에 바뀌었나?) 직접 불러서 올릴 수도 없고..ㅠㅠ
 일본 원제목은 '엄마 찾아 삼천리(母をたずねて三千里)'인데 당시 삼천리 자전거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삼만리'로 바꿨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수입할 당시 영어 원제목이 '3,000 leagues in Search of Mother'이었던 걸 보면, 3,000leagues가 14,484킬로미터이고 이걸 리(里)로 환산하면 36,880里이니 '삼만리'가 틀린 말은 아닌 듯 싶다.
 주인공인 마르코의 모습은 당시 미래소년 코난류의 얼굴과 거의 비슷한데 엄마 찾아 먼길을 떠나는 마르코를 생각하며 스케치한 그림이다. 울고 있지만 웃는 모습을 떠올려 봤다. 삶이 먹먹하고 힘들더라도 한 번 씨익~ 웃어주고 하루 시작하길.. 아자!!!!!
 
 

2014년 6월 24일 화요일

전략과 전술.. 그리고 피아노 반주..

 모든 일에는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전쟁도, 업무도, 축구도, 음악도... 성악가와 협력하여 어떤 곡을 하나 완성해 나가는 과정도 전체적으로 커다란 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빠르기는 어떻게 할 것인지, 피아노의 음량은.. 각 프레이즈(phrase)의 연결은..
 슈베르트 가곡 'Im Frühling(봄에, D.882)'는 장조로 시작해서 중간에 단조로 변한 다음 장조로 마무리되는 곡이다. 가볍게 걷는 듯 시작하는 반주.. 그리고 한 여인과 함께 걷기만해도 행복함을 느끼고 모든 자연에게서 그녀를 상상하는 모습.. 하지만 행복이 날아가며 슬픔이 머무는 모습에 곡조는 단조로 바뀐다. 하지만 새가 되어서라도 그녀에게 남아, 여름 내내 달콤한 노래를 불러주리라 다짐하며 장조로 마무리가 되는 아름다운 곡이다.
(전체 곡 듣기) http://youtu.be/MHmzzu4FAnM
 어떠한 전술적인 반주 테크닉을 필요로 하지 않기에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는 전략이 필요한데, 특히 슬픔으로 마무리하는 단조를 끝내고 자연스럽게 장조로 전환되는 부분의 반주자 느낌이 중요하다. 괴르네의 반주를 맡고 있는 헬무트 도이치는 듣기에도 너무 성급하게 흐르는 느낌(영상 첫번째).. 이에 비해 충분히 넉넉하게 슬픔을 삼키고 장조로 전환하는 리히터(영상 두번째)는 바리톤 디스카우와 함께 이 곡을 최고로 만들어 준다.
(첨부한 영상을 비교하며 들어볼 것)
 (追加) 세부적인 전술은 뛰어났지만 전략에서 밀린 일본은 16강에 오르지 못했지만, 세부적인 전술은 부족해도 짜임새 있는 수비 전략으로 16강을 이뤄 낸 그리스를 보면, 다시금 전략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그렇다면 전술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한국은 어찌해야 하나? ㅠㅠ
 
 

2014년 6월 11일 수요일

베토벤 교향곡 5번과 파리채..

 '사랑하는 딸아, 너는 네 나이로서는 위험할 정도로 음악적이 되어가는 것 같구나! 심지어 5번 교향곡을 어떻게 시작하는지 알고 싶다고? 자, 긴 막대기(너무 길지 않은 것)을 오른손에 쥐고, 그 다음에는 공중에 구멍을 만들어, 파리 한 마리를 잡으려 하다가 한두 번 놓친 뒤에 다시 시도하는 동작과 대략 비슷하단다. 그런 다음 오케스트라가 시작하지 않으면... 글쎄, 그게 반드시 오케스트라의 잘못은 아니겠지.' (에리히 클라이버가 딸 베로니카에게 보낸 편지 中)

 당시 지휘에 흥미를 보인 딸 베로니카(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두살 위 누나)에게 약간은 놀리듯 서신을 보낸 내용은 놀리는 듯 하지만 의외로 정확한 표현이다.. 자, 증명 들어갑니다~ 다음 음악에 맞춰 집에 있는 파리채를 들고 똑같이 한 번 시도해 보시길..ㅋ
http://youtu.be/-skH9NVlhkE

 베로니카는 클라우디오 아바도(C. Abbado)를 보조하면서 많은 경력을 쌓았다고 한다. 베로니카로부터 아버지의 파리채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지는, 아님 나의 선입견 때문인지 몰라도, 비슷한 동작이 눈에 상상이 된다. '지휘자가 사랑한 카를로스 클라이버'를 읽으면서 아바도가 시카고 심포니와 빈필을 지휘한 말러(Mahler) 교향곡 전곡을 완주했다. 리듬의 화신(化身)이면서 그 스스로 하나의 작품이라 일컬어지는 클라이버의 세계를 교감하면서 듣는 아바도의 말러는 왠지 산만한 음악으로 느껴졌다. 워낙 좋아했던 2번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융화되지 않는 물과 기름같은 느낌의 연속이었다고 얘기하면 아바도 마에스트로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몰매 맞지 않을까? 걱정....

몰매 맞다 보면 살이 좀 빠져 '볼매'가 되지 않을까? ^^

2014년 5월 16일 금요일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과 도니제티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한 달여 前에 도착한 파바로티 에디션 1집(27CD)을 계속해서 듣고 다니는데, 사실 처음 받았을 때 LP로 만든 특별판(?)인줄 알았다.(포장지가 LP크기여서)..^^ 오늘은 ‘도니제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를 무감각하게 듣고 있던 中, 2막의 결혼식 장면에 이르러 하객들이 부르는 유명한 합창곡이 나오자, 자연스럽게 교회 찬송가에 나오는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을 흥얼거리게 되었다. ‘도니제티’의 오페라에서 따온 그 곡... 정략결혼과 비극적인 사랑, 그것도 살인과 자살로 마무리를 짓는 비극 오페라에서 찬송가 멜로디를 차용해온 자체는 조금 아이러니하다.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2막 중 합창 ‘Per te d'immenso giubilo’
 
찬송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점심을 먹는데 TV뉴스는 ‘금수원’ 이야기로 도배가 된다. ‘금수원’의 ‘금수’가 아름다운 비단을 뜻하는 금수(錦繡)가 아니고 인간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짐승 같은 인간들을 모아 정화시키는 곳이란 의미에서 금수(禽獸)를 뜻한다고 하는데... 그렇담 동물원 아닌가?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錦繡江山)’이 아닌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禽獸江山)’이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아니.. 자칫 금수(禽獸)들이 화를 낼 수도 있겠다. ‘그 놈들은 금수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퇴근하면서 3막의 ‘광란의 아리아’를 마저 들어야겠다.. 진짜 미친 세상이다..ㅠㅠ
 

 

2014년 4월 8일 화요일

성악가들의 "공기 반, 소리 반"..

 한 때 가수 박진영이 유행시켰던 말이 있다. "공기 반, 소리 반!" 노래를 할 때 숨을 실어서 노래하라는 얘긴데, 요게 나중엔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짜장 반, 짬뽕 반' 등 별별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패러디되기까지 했다. 사실 성악이나 합창 발성에서도 이 말은 중요한 포인트이긴 하다.

 같은 의미로 '한숨 반, 소리 반'이 절묘하게 조화되어야 눈물나게 가슴을 후벼파는 곡들도 있다. '한탄', '눈물', '슬픔'을 생각나게 하는 단어를 생각해 본다면 그건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일 것이다.

 첫 번째는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여자의 슬픔을 노래한 '슈만'의 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의 마지막 8번째 곡 'Nun hast du mir den ersten Schmerz getan(이제 당신은 처음으로 네게 고통을 주는군요)'에서의 '한숨 반, 소리 반'이다. 소프라노 에디트 마티스(Edith Mathis)는 남편이 죽어 세상이 공허함을 표현하는 'ist leer(공허하다)'의 발성이 그 어느 성악가보다도 더욱 한숨이 많이 섞인 공허한 소리를 들려준다. (영상 1분 11초 부분) http://youtu.be/5QbBzofLBtI?t=1m2s

 두 번째는 자식의 죽음으로 인한 아버지의 슬픔을 노래한 '말러'의 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의 1번째 곡 'Nun will die Sonn' so hell aufgehen(이제 태양이 찬란하게 떠오르려 하네)'에서의 '한숨 반, 소리 반'이다.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D. F. Dieskau)는 아이의 죽음을 겪은 직후의 참담한 심정을 절절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마지막 'der Welt(이 세상)'를 묘사할 때의 발성은 한숨이 아닌 절규에 가깝다. 그 어떤 가수도 이 정도의 '공기 반, 소리 반'을 표현하는 경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영상 5분 14초 부분) http://youtu.be/6O8Jn-Uk56k?t=5m2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