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6일 금요일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과 도니제티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한 달여 前에 도착한 파바로티 에디션 1집(27CD)을 계속해서 듣고 다니는데, 사실 처음 받았을 때 LP로 만든 특별판(?)인줄 알았다.(포장지가 LP크기여서)..^^ 오늘은 ‘도니제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를 무감각하게 듣고 있던 中, 2막의 결혼식 장면에 이르러 하객들이 부르는 유명한 합창곡이 나오자, 자연스럽게 교회 찬송가에 나오는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을 흥얼거리게 되었다. ‘도니제티’의 오페라에서 따온 그 곡... 정략결혼과 비극적인 사랑, 그것도 살인과 자살로 마무리를 짓는 비극 오페라에서 찬송가 멜로디를 차용해온 자체는 조금 아이러니하다.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2막 중 합창 ‘Per te d'immenso giubilo’
 
찬송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점심을 먹는데 TV뉴스는 ‘금수원’ 이야기로 도배가 된다. ‘금수원’의 ‘금수’가 아름다운 비단을 뜻하는 금수(錦繡)가 아니고 인간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짐승 같은 인간들을 모아 정화시키는 곳이란 의미에서 금수(禽獸)를 뜻한다고 하는데... 그렇담 동물원 아닌가?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錦繡江山)’이 아닌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禽獸江山)’이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아니.. 자칫 금수(禽獸)들이 화를 낼 수도 있겠다. ‘그 놈들은 금수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퇴근하면서 3막의 ‘광란의 아리아’를 마저 들어야겠다.. 진짜 미친 세상이다..ㅠㅠ
 

 

2014년 4월 8일 화요일

성악가들의 "공기 반, 소리 반"..

 한 때 가수 박진영이 유행시켰던 말이 있다. "공기 반, 소리 반!" 노래를 할 때 숨을 실어서 노래하라는 얘긴데, 요게 나중엔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짜장 반, 짬뽕 반' 등 별별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패러디되기까지 했다. 사실 성악이나 합창 발성에서도 이 말은 중요한 포인트이긴 하다.

 같은 의미로 '한숨 반, 소리 반'이 절묘하게 조화되어야 눈물나게 가슴을 후벼파는 곡들도 있다. '한탄', '눈물', '슬픔'을 생각나게 하는 단어를 생각해 본다면 그건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일 것이다.

 첫 번째는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여자의 슬픔을 노래한 '슈만'의 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의 마지막 8번째 곡 'Nun hast du mir den ersten Schmerz getan(이제 당신은 처음으로 네게 고통을 주는군요)'에서의 '한숨 반, 소리 반'이다. 소프라노 에디트 마티스(Edith Mathis)는 남편이 죽어 세상이 공허함을 표현하는 'ist leer(공허하다)'의 발성이 그 어느 성악가보다도 더욱 한숨이 많이 섞인 공허한 소리를 들려준다. (영상 1분 11초 부분) http://youtu.be/5QbBzofLBtI?t=1m2s

 두 번째는 자식의 죽음으로 인한 아버지의 슬픔을 노래한 '말러'의 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의 1번째 곡 'Nun will die Sonn' so hell aufgehen(이제 태양이 찬란하게 떠오르려 하네)'에서의 '한숨 반, 소리 반'이다.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D. F. Dieskau)는 아이의 죽음을 겪은 직후의 참담한 심정을 절절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마지막 'der Welt(이 세상)'를 묘사할 때의 발성은 한숨이 아닌 절규에 가깝다. 그 어떤 가수도 이 정도의 '공기 반, 소리 반'을 표현하는 경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영상 5분 14초 부분) http://youtu.be/6O8Jn-Uk56k?t=5m2s

2014년 3월 30일 일요일

하이든 천지창조 1965년 잘츠부르크 실황, Karajan과 Wunderlich

'이가 없으면 잇몸'이란 속담도 있지만 이건 그냥 씹지도 않고 꿀꺽 삼켜버렸다..
 1965년 잘츠부르크에서의 하이든 '천지창조(Die Schopfung)' 공연은 카라얀과 분덜리히의 실황 녹음이라 더욱 관심을 받았던 음반이었다. 모노녹음이긴 하지만 이후에 나온 스튜디오 녹음보다도 더욱 힘과 추진력이 느껴지는 음반이었는데.. 마지막 곡 '만민아 소리 높여 찬양하라(Singt dem Herren alle Stimmen!)에서 기운이 쏙 빠져버렸다..
 4명의 솔로와 합창이 함께하는 피날레에서 솔로 부분을 빼버린 것이다.. 스튜디오 녹음에선 앨토 솔로파트를 '루드비히'가 잠시(?) 참여하지만.. 실황은 아마도 앨토 솔로가 준비되지 않아 빼버린 듯 싶은데... 솔로의 악보 테크닉적인 면에서 본다면 합창단인 빈징페라인의 멤버 중 한명이 솔로를 담당했어도 잇몸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이 들건만... 솔로 파트가 빠져버린 합창만의 마지막 곡은 호모포닉과 폴리포닉의 치열한 싸움을 느낄 수 없게 되어버려 당시 카라얀의 임기응변(?)이 다소 아쉬울 뿐이다.. 솔직히 이유는 잘 모르겠다..ㅠㅠ
솔로와 합창이 버무러진 하이든 버전..
http://youtu.be/vAxXDt9dOrE
솔로는 쏙 빼버린 카라얀 버전..
http://youtu.be/0wd-mFF-U1Y

2014년 3월 26일 수요일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

날씨가 금방 무언가 내릴 마냥 잔뜩 흐려져 있다. 분위기상으로는 눈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날씨다. 이런 날 어떤 음악이 가장 좋을까를 前에 함께 클래식 모임하시던(안단테) 분들과 얘기하다가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살짝 올려 놓으니 나름 어울리는 듯 했다. 다시 사무실에 들어와 요즘 잘 나가는 프랑스 피아니스트 엘렌 그리모가 연주하는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켜 놓았다. 몇 분이 흘러 피아노 협주곡 23번의 2악장 아다지오가 흐르는 순간 오늘 느낌과 너무나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는 흐리지만 하루를 정리하며 차분해지는.. 그리고 하나님의 타이밍을 다시금 느끼게 되는 이 순간 말이다... 정말 절묘하게.. 이어지는 감사기도..


John Rutter 'Gaelic Blessing'과 아버지의 봉투..

 울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생일을 맞으면 꼭 봉투를 보내신다. 올해도 변함없이... 이젠 안 주셔도 된다고 말씀을 드려도 그게 당신의 행복이라 말씀하시며..ㅠㅠ 이젠 연세가 드셔서 글씨도 예전 같지 않으시지만, 그 속엔 사랑이 가득하다..

 현존하는 최고의 합창 작곡가 중 한 분인 John Rutter의 'A Gaelic Blessing'을 통해 부모님의 축복을 기도해본다. 스코틀랜드에서 쓰이는 켈트계의 언어인 'Gaelic'의 축복이라고 느낌이 남다르진 않겠지만..^^

 

 먼저 이 곡을 웨일즈 출신 하피스트인 'Catrin Finch'의 편곡 연주로 한 번,

http://user.chol.com/~g6546/Gaelic_Blessing.mp3

 

 그리고 John Rutter의 수족과 같은 캠브리지 싱어즈의 아름다운 합창으로 두 번,

http://youtu.be/ObrYXo93QYI

 

 이렇게 두 번 연속해서 축복된 멜로디를 받으면 머릿속이 정화되는 신비한 현상이.. 물론 믿거나 말거나 말이죠..ㅋ

2014년 3월 16일 일요일

실황 녹음에서 디스카우의 실수..

 이젠 고인이 되신 '피셔 디스카우(D.F.Dieskau)'를 너무 좋아하다보니 음반이 눈에만 보이면 거의 집는 못된(?) 버릇이 있다. 저번 주엔 칼뵘(K.Böhm)이 지휘하는 1962년 8월 19일의 잘츠부르크 실황 음반을 들었는데, 모차르트와 말러, 그리고 리하르트 쉬트라우스의 곡으로 채워진 음반이었다. 모노 녹음이고 하여 모차르트나 쉬트라우스 곡엔 별 관심이 없었고 오직 디스카우와 함께한 말러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Kindertotenlieder)'에만 집중되었다. 디스카우 웹사이트 운영자인 모니카 볼프(M.Wolf)가 만든 디스카우의 디스코그라피(Aldrovandini부터 Zemlinsky에 이르기까지 539페이지에 달하는 백과사전 같은 책)를 살펴보니 1955년 이후 5번째 녹음인 음반이었다.

 

 디스카우는 스튜디오 녹음과 실황녹음이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노래하는 가수다. 하지만 라이브에서 그토록 완벽한 디스카우도 종종 큰 실수를 저지른다는 사실, 이 음반도 듣다보니 마지막 곡 'In diesem Wetter, in diesem Braus(이 같은 날씨에 몰아치는 폭풍우 속에는)'에서 크게 딱 걸리셨다. 74마디 75마디 가사 'in diesem Wetter, in diesem Graus'를 연속해서 불러야 하는데 무려 한마디를 건너 뛰어 부른다. 쬐끔 당황하셨는지 다음 가사가 'gesendet'인데 'gelassen'으로 바꿔 부르기까지(보냈든.. 냅뒀든.. 이상하진 않지만)..ㅠㅠ

 

 디스카우님이 실수한 음반을 들어보면 주빈 메타와의 뤼케르트 가곡에서도 그렇고 감정이 최고조로 달하는 시점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실수한 음반을 들으면 더욱 인간적인 느낌이 들어서 좋다. 나도 그렇지만 흥분하면 누구나 똑같다는 생각에..^^ 다음해에 칼뵘과 이 곡을 다시 녹음했는데 한 번 들어보시길.. 아버지의 처절하고 비통한 슬픔 뒤에 조용히 탄식하며 체념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마지막 곡...

 

http://youtu.be/UsESbUJxXD8


2014년 3월 3일 월요일

Lobet den Herrn in seinen Taten _ J.S.Bach Motets BWV 225

 바흐(J.S.Bach)의 여섯개 모테트를 엄청 좋아한다. 이 음반도 한 20여종 이상은 가지고 있는 듯 하다. 합창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연주하는 2중 합창이기에 듣기에 청량감도 있고 또한 화려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 당시 오르간의 풍부한 음역에 맞춰 여러 분리된 합창단을 만들고 다양한 시험을 했다는 소문(?)에 근거해 보면, 바흐도 아마 합창을 여러 가지 형태로 실험해 보고 싶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재미있는 사실은 헨델의 메시아 악보의 성악 파트를 보면 a(라)음 이상이 올라가지 않는다. 물론 당시 보이소프라노의 a음 이상의 발성에 대한 부담도 있었겠지만 혹은 신에 대한 도전으로 봤을 수도..ㅋ


 요즘 합창 음악이야 하이 C이상의 고음도 쭉쭉 올려 만들고 불러대지만 그 당시엔 일정한 음 이상의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바흐 모테트에는 b(시)플랫 고음이 등장한다. 유명한 'Singet dem Herrn ein neues Lied(주님께 감사의 새노래를 불러드리자 BWV 225)'의 세번째 파트 'Lobet den Herrn in seinen Taten'의 마지막 '할렐루야'를 소리쳐 부르는 1, 2그룹의 소프라노 파트는 정확히 b플랫을 찍고 내려온다. 바흐가 그 당시 신성시(?)하던(이 부분은 완전 개인적인 견해) a를 넘어서 b플랫 음까지 사용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음을 부드럽게 말끔히 올리고 마무리하는 합창단이 최고의 합창단이라는 사실.. 그런 점에서 보면 리아스 실내합창단은 정말 너무 쉽고 아름답게 종지부를 찍는다..^^